사회, 국방, 법 등 광범위한 정치를 말하다.
이렇듯 이 논문에서 밝힐 내용은 율곡의 철학을 바르게 이해하고 그 바탕 위에 율곡의 경세사상, 즉 그가 40세 때에 쓴 『성학집요』를 중심으로 밝히려 한다.
Ⅱ.本論
1.율곡의 현실인식
율곡이 살았던 16세기의 정치적 현실은 조선왕조의 정치
이상사회에 도달하고자 제왕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성학십도’역시 수신이 정치의 근본이 됨과 동시에 수신의 방법과 그 철학적근거를 밝히고 군주의 도덕적 수양을 강조하고 있다. 진지한 성리학적 사유와 도덕적 명분의 확립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대하는 당시 성리학자들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사회성을 지닌 맹자의 의가 나타내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맹자는 인의를 바탕으로 한 도덕정치, 즉 덕치주의를 이상으로 하며 민본주의에 입각한 왕도정치를 역설하였다.
2)왕도정치의 개념과 역할, 역사
일반적으로 패도(覇道)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패도가 힘에 의해 정치
사회에서 자신의 이상을 실천하고자 하였으나 뜻대로 이루지 못한 비운의 천재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는 무엇보다도 백성과 함께 숨 쉬며 그 뜻을 이루고자 하였고 충심으로 임금에게 간언하여 나라를 구하고자 하였다. 여기에서는 ≪격몽요결≫, ≪학교모범≫등을 중심으로 율곡의 철학과 교육사
철학산책3공통) 1. 교재에 등장하는 중국과 한국의 철학자 12인 중 가장 선호하는 철학자 한 명을 선택하여 그 철학자의 중심사상을 정리(A4 1쪽 분량)한 후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열을 올리는’ 이러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데 동양철학이, 또는 동양철학자의 어떠한 주장과 이론이 도움이
철학의 전체적인 흐름이 실생활의 분비보다 수기면을 강조한 사음 중심의 교육과 공리공담의 이기설, 이기호발설이나 사단 칠정론에 편중하여 실사실물의 학문을 경시한 것 등은 비판받아야 할 것이다.
18세기 조선사회에는 실지 사정에 입각한 실제적 사고를 세우기 위해 실학파가 대두 되었다.
사회 구성원들이 각자의 신분과 지위에 따라 맡은 바 역할을 다할 때 안정된 사회가 형성된다는 정명사상을 역설하였고, 진정한 사회질서는 강제된 법률과 형벌보다 도덕과 예의로 교화됨으로써 이루어진다는 덕치를 강조하였다. 아울러 그는 모든 사람이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이상사회로 대동사회
된다고 본 것이다. 또한, 아렌트는 문제의 해결에 있어서 폭력이나 무력이 아닌 발언이나 설득을 통한 해결이 더욱 가치 있는 것이라고 생각 하였으며, 결국 정책의 시행에 있어서도 주민과의 의사소통 등의 과정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하였다.
2.4.2 정치와 철학의 결합 필요성
율곡의 부국강병론 : 조선 왕조는 여러 왜란을 겪고도 모든 책임을 전가한 채 오랑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이에 율곡은 나라를 부유하게 하고 나라를 지킬 힘은 스스로 찾는다는 부국강병론을 제시하게 되었는데 이는 십만양병설을 주장했다는 것으로 알 수 있다. 십만양병설
율곡의 출현
- 16세기 중반 이후 한국 유학은 큰 전환을 보게 된다. 조선 전기의 도학적 전개에서 인성론적(人性論的) 전개로의 전환이 바로 그것이었다. 거듭된 사화(士禍) 조선 시대에, 조신(朝臣) 및 선비들이 정치적 반대파에게 몰려 참혹한 화를 입던 일. 무오사화, 갑자사화, 기묘사화, 을사사화가